#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에서 끝나다. 이창동 감독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삶을 말한다. 영화 '밀양'은 꽤 긴 런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주제가 좀 무겁다. 분명한건 영화관을 나와서도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한 영화였다. 아마 꽤 한동안 '밀양'을 곱씹을 것이다. # 피해자가 용서하기 전에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 전도연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신애'의 격동적인 감정의 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신애는 남편을 잃고 밀양에 살러온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완전히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자신의 절망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싶은 것이다..
#1. 실비길렘 일인무 발레단 입단 3년 만에, 그리고 프랑스 오페라 발레단 350년 역사상 최연소로 발레단 최고 위치인 에뚜왈(Etoile)이 된 천재 발레리나 실비길렘 실비 길렘에 대한 사전지식이라고는 고작 LG아트센터의 안내책자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실비 길렘 이후로 발레계에 스타가 나오질 않는다길래, 얼마나 대단한 무용수일까 궁금했다. 워낙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가 커서 42살이 되어버린 천재 발레리나는 어떨지 상상했었다. 그녀가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는 극찬을 받는 공연을 다녀왔다. 대단하다. 믿을 수 없이 긴 그녀의 팔과 다리는 너무나 유연하고 우아하여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있는듯 했다. 대개 무용공연을 보면 그들의 신체적 자유로움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실비 길렘..
#1. 소통의 부재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소통의 부재를 낳았다. 모두가 소통할 수 있었던 언어를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우리는 그 어느 누구하고도 소통하지 못하고, 평화와 안정을 얻지 못한다. 모로코, 미국, 도쿄, 멕시코에서 6개의 언어로 전개되는 4개의 이야기는 모두 소통과 화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미움이 단순히 언어때문이 아님을 알고있다. 우리가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래된 편견으로 인해 타인을 배타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핑계대고 있을 뿐이다. #2. 편견 모로코 어느 마을에 등장한 총 한자루는 세계 곳곳의 삶에 파장을 일으킨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 부부가 총상을 입고, 그때문에 할 수 없이 멕시코에서 열리는 아들의 결혼식에..
개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대와 국가에 의한 잔인한 상처와 고통을 개인은 어떻게 극복해가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 개인들을 바라보는 후대의 평가가 재미있다. 한때는 내 존재가 뜻하지 않게 다른 존재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고통을 개인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얼뜨기 정치인들은 전쟁자금을 모으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영웅은 단지 그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 어디에도 영웅은 없다. 그러나 전쟁시에는 모두가 영웅을 만들어 내고 싶다. 영웅으로 인해 영원히 안락한 삶을..
연극이 좋은 이유는 생생함이다. 사람이 있어서 좋다. 기가 느껴져서 좋다. 움직이고 살아있는 생동감이 좋다. 한발치 물러서서 소극적으로 극을 즐기는 나를 좀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서 좋다. 그래서 관객석에 불을 켜고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를 좋아한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본다' 한계가 있어서 삶이 아름답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다. 누군가가 그럴 때마다 삶이 꼭 아름다워야 할까, 혹은 아름다운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등, 왠지모르게 삐딱하게 굴었다. 결국 삶은 가끔은 아름답고 가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모든 가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별 책임감 없이 결론지었다. 삶은 살아내는게 아니라 지속될 뿐이다. 염쟁이 유씨는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늘 타인의 죽음과 함께 살.아.왔...
말 그대로 눈물나게 재미있다. 오랜만에 그 훌륭한 재능이 부러워서 잠 못 이뤘다. 그들은 가족이다. # 첫번째 증거 싫다. 서로가 서로의 삶을 힘겹게 한다. 참 지겹고 싫다. 그들 덕분에 인생은 더 피곤하고 피폐하다. 위로는 커녕 혼자 내버려 두길 간절히 바란다. 그 짧은 여행하나 함께 하는 것이 못마땅한 그들은 분명 가족이다. 장면> 저녁식사. 각자의 캐릭터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다.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엄마, 모든 것이 귀찮고 무관심한 아들-게다가 9개월째 침묵수행 중, 헤로인 중독 할아버지, 절대무패 8단계의 창시자 아버지, 미스 아메리카가 꿈인 귀염둥이 딸,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국 최고의 프로스트 학자인 게이 삼촌의 너무나 치밀한 대화의 장을 보여준다. 의견의 일치, 서로..
그 시대를 살아낸 세대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다. 신념과 사명감으로만 배불러야 했던 80년대 대학생들에게 아주 조금은 감사하고, 미안하고 싶다. # 혼자만 행복하기 미안하던 시대 왜 그랬어요? 천년 만년 헤쳐 먹을 그들을 맞선다고 무엇이 달라진답니까? 인생은 길쟎아요. 시대는 변하고 신념도 변하고 아는 것도 바뀝니다. 더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나를 희생하고 세상을 위해 신념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당키나 하답니까? 내 행복을 팽개치고 무슨 영광을 얻겠다구. 대체 그 신념은 누구의 행복을 위해서랍니까? 내가 빠진 사회를 꿈꾸던 것부터가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이었어요. 당신들 그 잘난 엘리트들이 숨막히도록 진지하게 토론하고 치열하게 싸운 덕에 세상은 좀 나아지긴 했어요. 적어도 나 혼자만 행복..
중학생 때, 처음으로 내가 아닌 사람의 감정 혹은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벌로 반 전체가 손바닥을 맞게 되었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 수록 긴장되었다. 크게 아프지 않다는걸 아는데, 손바닥을 맞은 친구들의 표정이 날 긴장시켰다. 내가 저 아이의 감각을 대신 느낄 수 있다면, 혹은 내 순서에 나 대신 누군가가 고통을 대신 느껴준다면. 그러다가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되면 '나'가 과연 존재할까? 서로가 감각, 생각을 혹은 감정의 절대적 크기를 나눌 수 있다면 세상에 나는 없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기분이 너무 이상해져서 손바닥을 맞은지도 모르고 있었다. 애를 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 감정, 감각을 가늠해 보려고 하지만 모른다. 기껏해야 아는 척 정도다. 가끔씩 누군가를 위로해야 할 때면, 반..
사랑은 핑퐁이다? 탁구는 공을 주고 받는다. 주기만 하는 탁구는 없을까? 하나마나한 이야기란다. 그러게 말이다. 하나마나다. 당연하다. 주기만 하는 탁구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동화같은 사랑. 사이보그지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랑. 이상하다고 고쳐야 한다고 변해야 한다고 판단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사이보그지만 평생 AS 해준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사이보그지만 먹어도 괜찮은 발명품을 만들어준다. 그니까 는 그야말로 로맨틱의 절정이다. 상대의 세계를 온전히 수용해주는 넓은 사랑. 영군에게서 훔쳐온 동정심으로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일순은 한없이 작아질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해나간다. 영군 덕분에 더이상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영군은 일순이 동정심을 ..
다르다. 캐릭터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고, 무엇보다 무게중심이 다르다. 사실 무간도는 전반적으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뚜렷이 기억하는건 양조위의 표정. 양조위 최고. 너무 심하게 팽팽한 유덕화는 아웃. 그리고 그 어둡고 침침한 특유의 느와르 분위기. 느와르 분위기야 헐리웃이 따라갈 수가 없지 않을까. 하지만 전체적으로 뚜렷한 인상이 없다는건 좀 산만했다는 얘기다. 홍콩 느와르가 늘 그렇듯 감정이 지나치다. 초딩때는 영웅본색을 보면서 화면 밖으로 넘실대는 감정에 꺼억꺼억 했지만 이제 좀 귀찮다. 디파티드는 일단 감정이 깔끔하다. 그래서 캐릭터도 뚜렷하다. 훌륭한 편집과 확실한 캐릭터 설정은 헐리웃의 장점이다. 웬만한 헐리웃 영화에서는 대개 이 두가지는 크게 실망스럽지 않다. 말할 것도 없는 잭 니콜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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