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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영화

<영화> 바벨

플라밍고 2007. 3. 8. 02:38
#1. 소통의 부재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소통의 부재를 낳았다. 모두가 소통할 수 있었던 언어를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우리는 그 어느 누구하고도 소통하지 못하고, 평화와 안정을 얻지 못한다.

모로코, 미국, 도쿄, 멕시코에서 6개의 언어로 전개되는 4개의 이야기는 모두 소통과 화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미움이 단순히 언어때문이 아님을 알고있다. 우리가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래된 편견으로 인해 타인을 배타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핑계대고 있을 뿐이다.


#2. 편견

모로코 어느 마을에 등장한 총 한자루는 세계 곳곳의 삶에 파장을 일으킨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 부부가 총상을 입고, 그때문에 할 수 없이 멕시코에서 열리는 아들의 결혼식에 아이들을 데려갔던 보모는 미국에서 강제추방된다. 악의없는 모로코 형제의 경쟁심으로 쏘아진 총알은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형을 죽음으로 몰고, 모로코에 자신의 총을 선물하고 온 일본인의 딸은 그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에게 절박하게 소통을 갈구한다.

네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작게는 개인 사이에서, 크게는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소통하지 못한다. 미국인 부부는 미움때문에 서로를 향한 귀를 막아버렸다. 멕시코인 보모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미국인에게 부당한 시선을 받는다. 모로코 경찰은 형제를 향해 말보다 총을 먼저 겨눈다. 미국과 모로코는 총기사고를 놓고, 개인의 위급한 상황보다 테러이냐 아니냐에 열을 올린다. 말을 잃은 일본 여고생은 그 어느 누구의 집중도 받지 못한다. 절박하게 세상을 향해 소통을 시도해 보지만, 번번히 거부당한다.


#3. 악순환

미국인 여행객들은 모로코 마을에서 위협을 느낀다. 9.11테러로 예민함이 극에 달한 미국인들은 아무 근거없이 모로코 마을 사람들에게서 위협을 느낀다. 그러나 결국 위협을 가하는 쪽은 미국이다.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인 태도를 지닌 그들은 선의를 악의로 감지한다. 테러가 아님을 해명하기 위한 모로코 정부는 자신의 국민에게 말보다 총을 먼저 겨누게 된다. 멕시코 국경의 미국인 경찰은, 멕시코인 보모가 말하는 아이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타인을 배척할수록 그들이 느끼는 위협은 점점 커진다. 그리고 힘을 가진 그들은 타인에게 더욱 잔인해진다.  


#4. 미래

영화 '바벨'은 정치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개인의 소통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도쿄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자칫 정치적으로 치우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작 21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었듯 곤잘레스 이냐투리 감독은 개인의 평화와 화해를 말한다. 신의 노여움을 산 인간은 소통할 수 없기에 안정을 얻을 수가 없지만, 해피엔딩을 꿈꿀 수 없지만, 그래도 서로를 향한 귀를 여는 노력을 통해 세상과 화해를 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편견과 미움 그리고 적의를 넘어서, 소통하는 것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신의 노여움인 바벨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애틋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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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벨'의 느낌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극장을 나와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쳐 걸으면서도 먹먹한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오랜만에 본 잔향이 긴 영화였다. 무엇보다 이런 플롯이 재미있다. 총한자루에 얽혀있는 동시다발적인 이야기.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저마다 연결되어 있다는 운명적인 구성이 좋다. 모로코, 멕시코, 됴쿄, 미국을 저마다 특유의 분위기로 연출하여 구성을 빛냈다. 회색빛의 삭막한 느낌의 도쿄는 외로웠고, 열정적이고 생동감이 가득한 멕시코는 에너지가 넘쳤지만 불안해보였다. 편집도 훌륭했다. 여러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됨에도 각 이야기는 연관된 이미지가 연결되어 자연스럽고 정확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게다가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바벨'이 품은 숭고함을 더욱 빛냈다. 개인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화해에 집요했던 전작 '21그램'과는 또다른 매력이다. 영화를 본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가슴이 떨리는 것을 보면, 언제든 내 인생의 의미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