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기념으로 나홀로 훗카이도 여행. #1. 첫 번째 도시 : 하코다테일본에서 가장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도시. 한때 최고로 번성했으나 지금은 역사의 한켠으로 벗어나 정갈하게 낡은 도시. 치토세 공항에서 JR타고 하코다테역으로. JR 지정석이 매진이라 자유석으로 타서 처음 1시간은 입석으로. 그래도 모든 게 용서되는 설레는 첫 날. 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준비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믿고 온지라 하코다테역에 도착하자마자 어리둥절. '호텔은 어떻게 가지?'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캐리어 끌고 돌아다니다가 트램을 보고 일단 탐. 하코다테의 호텔은 참 마음에 들었음. 들어오자마자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하코다테 야경을 구경하러 나감. 멀티콘센트를 가져오지 않아서 멘붕이었으나 곧 잊어버림. 관광객이 너무..
Portrait of Lician Freud #1."내가 M시에서 태어났다는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고의든 실수든 틀리게 말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그 도시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어디서 낳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틀리게 말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어디서 낳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으므로 틀리게 말했다고 의심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그런 의심이 아주 들지 않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마땅하지 않다.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이 막연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승우 소설 중- 이승우 작가의 문장이 참 좋다. 저 정도만으로도 인물의 캐릭터가 단박에 그려진다.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미루고 미루던 지난해 신년 계획 총정리새해가 시작된지 2개월째인데 여전히 만사 귀찮음. 역시나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웠고, 거의 실패함. 매번 느끼지만 참 포부가 큰 여자. 앞으로 계획은 부디 3개 이하로... 1. Career 관련1) 8월 졸업. 또 졸업. 무조건 졸업. → 실패. '무조건'이라니...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둔함이란... 당찬 포부와 달리 졸업은 반학기 미뤄졌으나 졸업을 했다는 것이 중요함. 드디어, 마침내, 졸업이다!!!2) 해외 학회지 투고 → 실패. 졸업 하는 데만도 기력이 쇠했음. 이제 예전만큼 당나귀처럼 열심히는 못하겠음. 앞으로 해야지...3) 국내 학회지 투고 5편 → 실패. 뭘 이렇게 빡쎄게 계획을 세운건지... 근데 정말 작년엔 졸업논문 이외엔 실적이 하나도 없네..
가만히 있는 거 좋아한다니까. 20대 중반에는 취업 실패를 통해 불러일으켜진,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던 불안을 넘느라 가열차게 방황을 한 번 했고, 30대 후반에는 박사논문 지연을 통해 불러일으켜진, 오랫동안 무시해왔던 나의 허약함을 끌어안느라 치열하게 방황 중이다. 다행히 30살 이후로 나는 더이상 쓸데없이 불안하지 않고, 지금도 이 시기가 지나면 더이상 영문도 모른채 서럽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안다. 다만, 지금의 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 스스로에 대한 통제감을 잃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큰 실수 없이 자잘한 실수들 정도가 나를 지나갈거고 겉으로 기능상의 문제는 거의 없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번 그 끝도 없고 아무도 없는 낯선 공간 속에 내팽..
서러움. 나의 요즘 상태는 서러움이었다. 내가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감정이 서러움인데, 지금 딱 더할나위없이 서러웠네. 이제서야 이해할 수 없던 최근의 모든 행동이 아귀가 맞는다. 나는 똑부러지는 유능한 어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밀려드는 서러움에는 속수무책이다. 뭐가 그렇게 서럽냐면,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나를 귀찮아 하는 게, 나를 모르는 척 하는 게, 나를 버려두는 게,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게, 나를 다정하게 바라봐주지 않는 게, 나를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 게 그런 게 아닌 걸 머리로는 알지만 난 아직도 작은 아이 때의 그 순간처럼 서럽고 슬프다. 난 어른인데도 딱 그만큼 서럽고 슬프다. 당연히 늘 그런 건 아닌데, 지금처럼 내가 크게 실망할 때마다 작은 아이일 때 느꼈던 그대로가 생생하..
#1. 가벼움 지난 한달을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애정이 그리웠나 싶다. 따뜻하고 애정어리게 바라봐주는 눈빛, 나를 알고 싶어하고 나에게 맞추고자 하는 질문들, 나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세, 혹시나 어긋날까 조심스러운 태도, 다정한 칭찬들. 내게는 필요치 않은 척, 나는 타인의 관심과 애정에 초탈한 척 굴었지만 매번 그 애정어린 눈빛과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소한 자극에 봄바람이 분다. 덕분에 모순적이게도 더없이 외롭다. 나에겐 여전히 관계가 무거워서 그 마음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언젠가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받아내는 날이 오겠지. #2. 속수무책 그 오래된 경험. 요즘에는 자주 없지만 한때 나를 속수무책 끌고 들어갔던 그 경험의 실체를 알아..
Salvador Dali, The Persistence of Memory 오늘만 잘 버티면 될 것 같은데. 오늘이 원래 예정된 심사일이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가슴을 졸이며 심사장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겉으로 드러나는 별다른 변화없이 일상을 지내고 있으나 심장은 두근거리고 이 시간 자체가 따끔거린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시간이라도 삶의 의미는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넘어가던 예전에 비하면 매순간이 보다 힘들다고 지각하는 거, 그리고 딱히 숨기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점이다. 6월까지는 이 생각 저 생각 말고 그냥 쉬어야지, 놀아야지 하면서, 머리로는 다시금 수정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느라 복잡했는데, 적어도 오늘 하루는 그냥 이렇게 두근거리는 상태로 심경이..
한번쯤 뒤통수가 깨질 때도 됐지. 벼락치기와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넘어왔고, 박사논문도 어떻게든 넘어가볼까 했는데, 안됐고, 안되겠다. 물론 박사논문 하나로 오래된 나의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연구를 하리라 믿어 의심치는 않지만 아직은 이 주제에 대한 질문을 하기에도 일정 수준의 지식이 쌓이지 않은 것 같다. 이전에도 모르지 않았으나 이 정도에서 만족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보다 심히 창피하다. 대충 어거지로 심사를 받는 것도 죽기보다 싫지만 어거지로라도 심사를 받을 정도의 수준도 안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몰라도 나는 안다. 언제부턴가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을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변명하며 지냈던 ..
#1. 끌리는 사람 영화 의 '리', 드라마 의 '하우스', 이승우 소설 의 '박부길', 존 쿳시의 소설 의 '치안판사'와 의 '루시' 등. 이런 캐릭터들에게 맥을 못춘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슬퍼도 슬퍼할 면목조차 없기에, 속죄하듯 가능한 모든 쾌락을 지우고 인생을 묵묵히 버텨내는 사람들. 죽는 것도 죄스러워 고스란히 삶의 무게를 받아내는 사람들. 내면을 텅 비어내 버린채 무참히 그저 견뎌내는 사람들. 이런 캐릭터들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불평도 하지 않고 힘들다고 말도 하지 않지만 무참하게도 텅 비어버린 눈빛에 끌린다. 영화나 소설과 같은 허구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더라도 (물론 드러내지 않아도 다 티가 나겠지만) 주변의 이런 사람들에게 난 유독 끌린다...
(스포일러 주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좋아한다. 특히 공간.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대한 주제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실존적 선택. 박사 논문의 주제도 '선택'에 관한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상담자로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도 내담자에게 이 '해석'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영화 '컨택트'는 내가 가장 관심 있어하는 개념이 모두 들어가 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흡족스러운 영화다. #1. 비선형적 시간 과거-현재-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헵타포드는 비선형 언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메시지를 한번에 전달한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삶의 유한성은 인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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