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830 독립할 때가 되었다. 아니... 지났다. 혼자서 살 때가 되었다. 혼자서 살면 굶어죽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지금도 집에서 밥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집에 있는 것이 하루에 길어야 8시간. 학교에서 왔다 갔다 이동시간이 넉넉잡아 3시간. 기름값으로 한 달에 30만원. 주차비까지 합하고 그 외 각종 차에 들어가는 돈을 합치면 몇 만원 더 되고. 매일 졸음 운전에 아찔한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다. 30이 넘어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
어느 시점부터 연애는 패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애가 일생 일대의 단 하나의 의미있는 사태는 아니다. 내 경험으로는 연애 감정 혹은 행동은 상대에 따라 다르지 않더라. 뭐... 내 경험으로만 비추자면 지나친 일반화가 우려되므로, 내 주변인들까지 관찰할 결과 그렇다. (주변인도 몇 되지 않지만...) 내가 불나방이라고 별명을 지어준 내 친구는 연애를 할 때마다 미친듯이 사랑한다.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위해 헌신한다. 그리고 연애할 때마다 그렇다. 연애 상대가 특별했다기보다는 그 친구가 연애하는 방식이 늘 그렇다. 사람들이 대인관계를 맺는 패턴이 일정하듯 연애 또한 대인관계의 일부이므로 패턴은 당연한 것. 그러나 유독 연애에는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온..
# 그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을 잃기 싫어서 먼저 관계를 단절해버린다고 했다. 자신을 알게되면 누구든지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너무나 쓸모없고 가치없어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진부한 얘기. 자기를 비난하지만 결국은 자기에만 집중하는 자기애. 따분하다. 하지만 그 절박한 눈동자를 보면, 자기를 사랑하는 그 깊은 열망을 마주하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감동스럽다. 살고자 하는구나. 살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발가벗고 질주하는구나. 아름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견딤이다. 그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견딘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 '왜 그렇게 사람에게서 애정을 갈구할까?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외로움을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 그에게 필요한 것 관계형성 능력. 사람들이 자기를 드러내어 건강한 관계를 맺고, 그래서 자신이 타인과, 또 자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 "기본적인 욕구는 아동기에 충족되었어도 성인기에도 여전히 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 욕구가 아동기에 적절하게 충족되지 않았다면, 그 욕구는 좀더 강렬하고, 유아적이며, 부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적 기술이 부족할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의 공격, 침입, 통제, 지나친 판단, 착취 등으로부터 안전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자신의 경계가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상태에서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 안전감을 느끼는 상태에서만 자신의 부족한 면을 직면하고 수용할 수 있다. 안전치 못하다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방어를 지울 ..
무형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학부 수업 때 어느 교수님께서 자본주의의 힘은 무엇이든 포용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혹시 그것이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도 수익을 창출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끌어안는 힘이라도 하였다. 체게바라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설명하였다. 자본주의 안에서 그 어떤 가치든 팔릴 수만 있다면 오케이다. 팔린다는 것, 수요가 있다는 것 혹은 필요와 상관없이 사도록 하는 것. 그것이 유형의 가치든 무형의 가치든, 팔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가치가 있어보이고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함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왜 팔아야 하는가'를 둘째치고 꼭 팔아야 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면, 거꾸로 자본주의에서 수익이 곧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내가 자본주의에서..
예전에 '굿바이 솔로'라는 드라마에서 배종옥이 맡은 캐릭터의 대사 중에 "젊어서 힘들겠다."가 인상깊었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그 의미를 이해했었다.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젊음의 아픔을 애도하는 것이었다. 정말, '젊음은 힘들다'는 것을 이제서 알겠다. 나한테 젋음은 '불안'이다. 선택에 대한 불안. 내 선택이 맞는지, 나를 믿어도 되는지 그리고 예측불허의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불안. 그 불안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인지를 알고 인정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실제로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크게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선택한 가치와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
이보다 더 멀고 가까운 관계가 있을까. 이보다 더 위로가 되고 피곤한 관계가 있을까. 이보다 더 정확하고 불명확한 소통이 있을까. 모순이다. 타인의 주관적인 세계에 함께 머무르며 공감을 하지만 이건 완전히 비현실적인 관계이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부분을 온전히 나에게만 나누고 더없이 특별한 관계를 맺지만 그러기 위해서 내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야 한다. 언어적, 비언어적 그리고 직관적 메세지의 모든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며 소통하지만 그 역시 결국 듣는 자의 해석이고 가설일 뿐이다. 결국 아무 것도 분명치 않고, 아무 것도 통제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상담이라는 것은 완전히 신념과 믿음에 기초할 뿐, 그 어디에서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건지 의문스럽고 혼란스럽다..
2박 3일은 그리 짧지는 않았다. 마라톤 상담이 처음인 나에게는 많이 피곤하고 지치는 과정이었다. 집단원의 50%가 넘는 이들이 아는 사람들이고 앞으로 계속 같이 생활을 할 사람들이라는 부담감이 가장 컸다. 여러 혼란스러운 입장 속에서, 그래도 얻은 바가 크다. # 1. 주목 받고자 하는 욕구 타인에게 굳이 나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결코 이해하게끔 하고 싶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전략이 주목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씁쓸하게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갓난 아이 때부터 어떻게든 내 존재를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애쓰므로 비정상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님은 알고 있지만 민망하고 촌스럽고 미성숙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어이없고 아무 대책이 생각이 나질 않고 그냥 멍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 그래서 당황스럽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에 학교 정문 앞에서 책가방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계속 허전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 정문 앞에서야 내가 실내화 주머니만 들고 등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에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찰나의 당혹감은 잊혀지질 않는다. 정문 앞에 서서 내 손에 든 실내화 주머니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 시간만 정지된 느낌, 그리고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해서 땅으로 꺼지고 싶었었다. 집에 돌아가면 지각할 것이고 그렇게 학교에 들어가자니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나의 삶의 기준이다. 그간은 나의 기준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었다. 단지 내게 문제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살고자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가 위험할 수 있다면 수입 반대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구도로 만들어짐으로써 내 인생이 고달퍼진다면, 그리고 내 아이가 별 고민없이 등수에 치어 학업에 연연하게 된다면 우열반이나 사립형 자립고는 반대다. 세계 초일류 기업국가가 되기 위해서 CEO대통령을 자처하며 대의(?)를 위해서 개개인의 삶, 물론 그 개인에 속하는 내 삶을 적당히 무시해주는 정책은 반대다. 모두의 행복과 안위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수 있다면 좋겠지만(그 안에 나의 행복과 안위가 포함된다면야...), 일단 내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행동할 뿐이다. 혹시나 무지해서 내 권리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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