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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실사구시(實事求是)

플라밍고 2010. 2. 10. 15:03

무형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학부 수업 때 어느 교수님께서 자본주의의 힘은 무엇이든 포용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혹시 그것이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도 수익을 창출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끌어안는 힘이라도 하였다.
체게바라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설명하였다.
자본주의 안에서 그 어떤 가치든 팔릴 수만 있다면 오케이다.

팔린다는 것, 수요가 있다는 것 혹은 필요와 상관없이 사도록 하는 것.
그것이 유형의 가치든 무형의 가치든,
팔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가치가 있어보이고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함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왜 팔아야 하는가'를 둘째치고 꼭 팔아야 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면,
거꾸로 자본주의에서 수익이 곧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내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떻게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이 안에서 적응해야 한다면,
최소한 내가 하는 일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음이 번득 무섭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 이외의 타인에게 나의 진정성을 인정받고서야 행복할 것 같다.

일단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는 알겠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
자신의 욕구, 소망, 성향, 능력, 가능성, 한계, 불안, 가치관, 행동˙사고 패턴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
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동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
결국 자신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
누군가의 존재를 목격하는 일.

꼭 상담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무형의 가치인 상담의 효과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이다.
내가 아무리 진정으로 효과가 있다고 '말'을 해봐야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상담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언어는 무엇일까?

그 전에,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야 했을까?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들에게 난로의 가치는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다를 것이다.
'추노'의 언년이에게는 대길이에게 받은 조약돌이 금은보화보다 가치있다.
이러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어느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큼 무형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측정해야만 했을까?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에게 가치 있는 것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교환하는 것의 불편함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다. 
실재의 가치와 상관없이 편리한 방법이다.
희소성을 기준으로 화폐단위를 사용하는 것이 시간, 거리, 장소, 언어를 넘어서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상담의 효과를 화폐단위로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 방법을 모르겠고,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상담의 효과를 추상적인 표현이 아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역동'이니 '성장'이니 등의 표현은 아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못알아듣냐고 서운해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왜 내 마음을 모르냐고 징징댈 수는 없지 않는가.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그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보다'라는 결론에만 이른다.
여전히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가 최대 고민이다.

타인과 가장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상담'에 이르렀는데,
이는 역시 결론이 아니었다.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