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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피곤하고 귀찮고 당혹스럽고

플라밍고 2009. 2. 1. 01:47

어이없고 아무 대책이 생각이 나질 않고 그냥 멍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
그래서 당황스럽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에 학교 정문 앞에서 책가방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계속 허전한 느낌을 받긴 했는데, 정문 앞에서야 내가 실내화 주머니만 들고 등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에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찰나의 당혹감은 잊혀지질 않는다. 정문 앞에 서서 내 손에 든 실내화 주머니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 시간만 정지된 느낌, 그리고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해서 땅으로 꺼지고 싶었었다. 집에 돌아가면 지각할 것이고 그렇게 학교에 들어가자니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다.  그 때와 비슷한 상황에 닥친 것도 아니고, 난 더이상 그 정도로 난감해하지 않을 만큼 커버렸는데도 오늘 그 당시의 느낌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너무나 귀찮고 피곤한 하루였다. 낯선 사람들과 자기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았다. 그리고는 언어 및 비언어적 표현 수단을 총동원하여 이제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할 수 있음을 전달했다. 마치 종교집단처럼 서로에게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감동을 나누었다. 비록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공감적인 분위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을 한거였나보다. 

아니고 싶었지만 고백컨데, 집단이 싫다. 다수의 낯선이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불편하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는게 싫다. 그들이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 없는데, 그들에게 공감하고 반응하는 것이 너무나 피곤하다. '개인'에게, 특정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나는 특히 피곤하다. 타인의 감정과 행동양식과 심리적 갈등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런 내가 '상담'을 공부하겠다고, 개인의 내적 갈등을 함께 고민하고 자기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 비로소 자아 실현을 돕는다는 '상담'을 하겠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훌륭한 인격체여야 타인의 자아실현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인지... 늘 의심스럽과 회의적이었지만 숨기고 있었는데, 우아하고 유식한 언어적 표현에 속는 척 했었는데, 사실은 난 그런 '상담'을 공부하고 싶지 않다. 당신을 이해할 수도 없고 당신의 감정을 가늠할 수도 없고, 당신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난 그저 당신 옆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만. 그리고 비록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귀찮고 피곤하더라도 당신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피곤함을 감수하겠다는 정도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그 보여주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당신이 만족할 만한 방식을 공부하겠다는 것이다. 내 피곤함이야 공부와 훈련을 통해 다룰 수 있다. 내가 당신과 함께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동정심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에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줄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내게 동정심을 강요하지 말길. 난 동정심이 별로 없다.
어제와 오늘 하루종일 격려와 지지와 공감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너무나 갑갑했었는데,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놓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