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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플라밍고 2007. 11. 25. 01:05

"세상의 모든 감정을 모두 느껴보고 싶었어. 난 용감하고 자신만만했으니까, 그 어떤 감정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기대했어."

"그랬겠지. 실제로 대단했어. 난 못했을꺼야."

"근데 이제는 웬만하면 느끼고 싶지 않아. 최소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면 설레지 않아도 기쁘지 않아도 된다 싶을 정도야. 두려움이 늘고 늘어 숭고할만큼 거대해졌어."

"누구나 그래. 누구나 불안 앞에서 당당할 수 없어. 다들 그렇게 산다구. 걱정마."

"...대체...말이 안 통하네. 그런 쓸모 없는 위로는 어디서 배운거니?"

"..."

"훨씬 낫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두려움에 비례하여 실제로 용감해진다는거야. 자신만만하게 모든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때는 조금만 불안해도 숨을 못 쉬었어. 근데 지금처럼 부숴지기 쉬운 때는 오히려 큰 불안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 숨을 쉬는지 못 쉬는지 그런건 안중에도 없을만큼 아무렇지도 않아."

"..."

"그래도 만족스럽진 않아. 난 여전히 내 불안이 무서워. 불안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넌 한 번도 불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

"불안하다고 죽지 않아. 불안하면 불안하면 돼. 온갖 고상하고 우아한 수식 어구 붙여서 스스로를 고독하고 대단한 영웅인 것처럼 만들지마. 너는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보지. 그리고 내가 불안을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염탐하려는 네 의도가 너무 빤해. 내가 내 불안을 어쩌든 신경쓰지마. 성가셔."

"쳇, 그냥 따뜻한 위로도 못하냐?"

"싫다며... 난 성가신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