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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망각

플라밍고 2007. 4. 7. 00:57

동기화된 망각(motivated forgetting)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망각하려는 무의식적 경향성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정말이지 할 줄 아는 것이 많다.

내 무의식은 몇 년 전 교통사고 당일을 지웠다.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지만 아무튼 2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당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고 이후로 동기화된 망각은 자주 일어났다. 예를 들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약속을 잊어버린다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까맣게 잊었다. 무엇을 잊어버리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이후로 일정을 메모하는 습관이 들었다. 나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난 언제든 틀릴 수 있고, 내 눈에 비친 것이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내 감각과 지각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는게 조금 편해졌다. 그리고 화를 조절하기가 수월해졌다. 나에게 씌운 엄격한 둘레를 덜었다.

정말이지 폭풍같던 내적갈등이 잠잠해졌다.

"젊어서 힘들겠다."

드라마 '굿바이 솔로'의 배종옥 대사이다. 지나가는 길에 천정명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하는거였다. 그랬나보다. 지금은 좀 더 대충, 대강 힘들어한다. 갈수록 신경쓸 일은, 책임질 일은, 성취해야 할 일은 늘어가지만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남보다 나를 먼저, 가족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하고 보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완벽히 독립하는 것. 특히 감정적으로. 가장 먼저 경제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