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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공간

<연극> 염쟁이 유씨

플라밍고 2007. 2. 17. 02:57


연극이 좋은 이유는 생생함이다. 사람이 있어서 좋다. 기가 느껴져서 좋다. 움직이고 살아있는 생동감이 좋다. 한발치 물러서서 소극적으로 극을 즐기는 나를 좀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서 좋다. 그래서 관객석에 불을 켜고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를 좋아한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본다'

한계가 있어서 삶이 아름답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다. 누군가가 그럴 때마다 삶이 꼭 아름다워야 할까, 혹은 아름다운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등, 왠지모르게 삐딱하게 굴었다. 결국 삶은 가끔은 아름답고 가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모든 가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별 책임감 없이 결론지었다. 삶은 살아내는게 아니라 지속될 뿐이다.

염쟁이 유씨는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늘 타인의 죽음과 함께 살.아.왔.다. 당연히 죽음은 유씨에게 무섭고 슬픈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아버지의 염을 시작으로 염쟁이가 되었고, 아들의 염을 끝으로 염쟁이를 그만둔다. 그 과정이 유쾌하고 즐겁게 진행된다.

'염쟁이 유씨'는 일인극이고, 관객과 소통하며 여러 캐릭터를 소화한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천차만별의 극이 탄생한다. 연극 '염쟁이 유씨'의 매력은 이것이다. 배우 유순웅씨의 개인적 역량도 물론이지만, 관객의 반응이 그 날의 공연의 재미를 결정한다. 공연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늘 같지만 늘 다른 공간이 형성된다는 것.

연극 내적으로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하도 많아서 기대가 컸는지, 공연 전에 너무 걸어서 피곤해서인지, 공연장 두레홀이 불편해서인지, 그날의 관객의 반응이 별로여서인지 혹은 극이 별다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배우 유순웅씨는 좀 지쳐보였고 그 기가 관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관객은 마음은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하지 못했고, 배우와 관객의 호흡은 종종 끊겼다. 그 결과 극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유쾌하고 재미있게 시작된 염쟁이 유씨의 입담이 극의 후반부로 가면서 변화를 기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염을 하는 사람이 염쟁이 유씨의 아들이라는 나름의 반전이 밝혀지면서 극의 감정은 클라이막스로 도약해야했다. 그러나 완전히 어색했던 것은 아니지만 염쟁이 유씨에 대한 감정이입이 힘들었다. 그 흐름이 자연스럽지가 않아서, 마지막으로 아들의 염을 하는 염쟁이라는 설정이 다소 밋밋해졌다. 옆에 앉은 커플이 그리 크게 훌쩍거리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들은 극에서 누군가 죽기만 하면 눈물을 흘려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염'이라는 소재로 삶과 죽음을 유쾌하게 그린다는 것에 끌렸다. 물론 연극에서 기대할 수 있는 생동감을 느끼긴 했지만, 극적 재미나 죽음에 대한 고찰 그리고 감동은 찾지 못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