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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굿바이, 청춘

플라밍고 2023. 5. 8. 22:13

나는 내가 가진 모순적인 욕망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게 그나마 나를 항상성에서 벗어나게 한다. 쉽게, 재미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를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다. 
나의 청춘의 상징인 그를 놓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제 그만 놓고 싶다.
다행히 나보다 현명한 그가 이 관계를 정의했지만 나의 사적인 논리는 그의 선택과 상관이 없다. 
(그러니 각자의 방식대로 갈길 가면된다.)
 
지난 밤, 낙담했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낙담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고, 안도는 지키고 싶은 것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 지키고 싶은 것도 잃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또한 마찬가지였을거라 추측한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안다는 것이 곧 수용은 아니니까.
다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각자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했을 거라는 것. 
 
나의 주관적 세계에서는, 설사 내 의식 수준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망정, 늘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1년의 교육분석을 통해 그와 나의 연결감을 의식 수준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 후 1년의 시행착오 끝에 그 연결감은 환상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환상은 지난 10년 간 내게 유리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늘 그랬듯, 나는 상당히 더디고, 내가 준비될 때까지는 그 무엇도 나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대기만성형이다, 내가)
이제, 나는 나의 청춘을 기꺼이 애틋하게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설레게 맞이하고자 한다. (그동안 서로 애 많이 썼다.)
 

굿바이, 청춘

 

 

그는 일년 내내 나에게 화를 냈다. (온전히 내 입장에서 해석했을 때)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싶었던 것처럼.  
물론 나도 얌전히 참고 있진 않았지만 충분히 반격하지도 않았다. 
그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랑 다르지 않겠지. 
그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나를 원망했고, 나는 나를 실망하게 만든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화가나면서도 사랑했기에 미안했고,

그가 원한 방식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원망과 나의 실망을 한시도 잊지않았다.  
 
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속물적이라 그에게 실망한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분노는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라 믿었다. 

어리석게도 (표현된 분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켜진 경험으로써의 분노 감정을 자책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고, 나의 한계에 실망했다.
다시, 말을 똑바로 하자면,
나는 나의 한계를 수용하지 못했고, 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그에게 실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원망과 나의 실망을 이해한다. 
나는 여러 번 같은 이유로 그에게 실망했지만 그는 물론 나또한 나의 실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원망과 나의 실망이 잘못이 아님을 안다.
또한 나의 실망을 잘못으로 치부했던 시간은 그의 원망에 대한 내 나름의 속죄였다.
낭만적인 환상이었다고 한들 그 대가가 나의 지난 10년이라면 할만큼 한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시간을 지나온 현재의 그와 나는 더이상 서로의 기억과는 다를 것이다. 

(10년 간 각자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달라졌으리라. 더 멀어졌겠지.)

 

마지막으로, 
나를 원망하는 너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하고,
내가 아닌 따뜻한 사람에게 충분히 위로받고 흔적도 없이 진정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나도 그만 나를 실망시킨 너를 용서하고, 내 실망의 타당한 이유를 기억하며, 스스로를 구할게.
항상 너의 건강과 행복을 일말의 잡티없이 바라고 기뻐할테니 부디 언제 어디서든 외롭지 않길.
이제 각자 가볍게 갈길 가자. 

 


뭘 하든 변화를 꾀하는 데 10년은 족히 걸리는 촌스러운 면이 있는데, 
그만큼 앞으로의 시간을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나름의 장점이다. 

(조급해봤자 최소 10년은 걸린다. 뭐든 참 늦되는 성품은 타고난 것이라.)
쓰다보니 희안하게 유행가 가사 같아서 또한 촌스럽고 마음에 든다. 
('유행가'라는 표현 자체가 촌스럽지만 이보다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