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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변화

플라밍고 2020. 6. 1. 08:46

Bernard Buffet(1928-1999) Vannes, Bateaux dans le port, 1973

광주생활 15개월 차
여전히 평탄하고 굴곡 없는 일상이긴 하나 만족스럽지 않다.
친구와 가족이 없는 낯선 곳에서 지내는 것이 대개는 그리 어렵진 않은데,
지난 달처럼 매일을 통제감을 잃은 채 탈탈 털리고 나면,
지치고 외로워진다.

나의 강점은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인데,
나이가 든건지 일이 힘든건지 예전과 같은 열정이 사라진건지 모두 다인지 그 원인은 모르겠으나
지치고 외로워졌을 때 회복이 예전만큼 빠르지 않다.

나는 삶의 목표와 직업가치가 뚜렷한 편이라,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이고,
현재의 내 위치와 역할에 대한 책무와 권한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그에 적합하게 행동하는 편이다.
쉽게 말하면 주제파악을 잘하는 편이라,
당장의 현실적 한계를 비교적 잘 받아들이고,
추후를 도모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지난달처럼 일상이 지긋지긋해지는 경우는 흔치않은데,
광주생활 15개월만에 일을 그만둬야 하나...하는 수준의 빡침을 경험했다.

이전에도 지금보다 힘든 일 투성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뭔가 발전해 나간다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있었고,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동기들과의 유대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일이 재미있었다.

지난 달, 어느날 문득
생전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결혼을 고려하게 된 것도,
현재의 나의 결핍을 채울 하나의 ‘수단’을 떠올리게 된 것인데,
어차피 앞으로도 탈탈 털리듯 하기 싫은 일은 많이 있을텐데,
위로받고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긴밀한 관계가 필요해진 것이다.

한참이나 긴밀한 관계는 피곤함과 연합되어 있었는데,
이제 관계에 대한 피곤함이 잊혀지고 관계가 주는 위로와 격려가 떠오른다.
워낙 감각이 둔하고 특히 고통에 둔감한 편이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피곤함을 지각하는 편이다.

물론 연애 상대가 혹은 결혼 상대가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관계일거란 확신은 없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조율해 나가볼 만한 의지가 생긴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목격하고, 나의 삶이 누군가를 통해 생생하게 기억되길 바란다. 서로의 영향으로 각자의 삶이 보다 다채로워지고 풍요로워지는 관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