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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모르는 사람들

플라밍고 2018. 2. 17. 23:12

Portrait of Lician Freud



#1.

"내가 M시에서 태어났다는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고의든 실수든 틀리게 말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그 도시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어디서 낳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틀리게 말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어디서 낳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으므로 틀리게 말했다고 의심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그런 의심이 아주 들지 않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마땅하지 않다.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이 막연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승우 소설 <모르는 사람들> 중-



이승우 작가의 문장이 참 좋다. 

저 정도만으로도 인물의 캐릭터가 단박에 그려진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현실에서 저런 캐릭터의 인물을 만나면 짜증스럽긴 한데, 

짜증스러우면서도 한편 참 끌리는 캐릭터이다. 

피곤하리만치 가시를 세우고 있으나, 

고슴도치처럼 연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가까스로 끌어모아 견디고 있는 한없이 가여운 느낌.



#2.

16년 2월, 수료했을 때도 그랬듯,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학위 논문을 끝내고 나니 

괜한 헛헛함에 여기저기 심술을 부리는 중이다.  

뭔가 불편한데 뭐가 어떻게 불편하지,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자지러지듯 울어제끼는 갓난 아기처럼 그냥 마냥 심술이 난다.   

변화가 생길 때마다 새로움에 적응하기 앞서 늘 거치는 과정이다. 

익숙한 것을 떠나 새로움을 받아들일 때마다 이렇게 애처럼 심술부리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언제 어른이 되냐...


여행을 다녀오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네. 



#3. 

이럴 땐 혼자 있어야 한다. 

지금 같이 심술궂은 상태에서는 괜히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기 일쑤다.

꼬투리 잡고 늘어지면서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괜한 사람 잡지 말고 가만히 혼자 있는 게 낫다. 

그러니 제발 나를 가만두면 좋겠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러니 누군가 생각난다. 

자기 발로 상담을 와서는 마치 귀찮다는 듯이 질문 하나하나에 짜증스럽게 답하던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것도 같다. 

물론 당시에도 나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고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그 마음이 와닿지는 않았다. 

이런 거였을까. 

어쩔 수 없는 데, 어쩔 수 없어서 더없이 짜증나는 거. 

해결할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할 필요도 없는 건데, 

짜증은 나는 거. 

에라이~ 심술궂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