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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싫어서.
파우치 분실 정도로 논자시를 무사히(?) 마쳤다.
논자시를 끝내는 데 파우치 하나 정도 잃어버린 것쯤은 선전한 것이라 본다.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닌지가 너무 오래돼서 이젠 정신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논자시만 끝내면 여유로울 줄 알았으나 논자시를 위해 밀어놓았던 일거리들이 줄기차게 아우성을 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그들의 아우성에도 그닥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놀아야겠다.
뭔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놀이가 없을까.
소비하는 놀이 말고 만들어 내는 놀이 없나.
일상 참... 불안 아니면 권태. 둘 중 하나다.
<Maurits Cornelis Escher, reptiles>
어린(?)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순탄치가 않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없어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결혼생활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설사 다른 대안을 선택한다고 해도,
이전보다 더 행복하거나 덜 행복할거라 믿지 않는다.
선택은 한 번 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선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게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내게 벌어질 상황을 미리 통제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내 몫이다.
해서 동생의 결혼은 탐탁치 않다.
결혼의 조건 따위야 좋을 수록 좋은거지만 그거야 말로 내 선택의 영향권이 아니니까 둘째치고.
적어도 스스로는 '왜' 결혼하는지는 알았으면 한다.
지금 '왜'를 찾아도 살다보면 달라지게 마련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나의 결정과 행동에 이유는 스스로 알고 있어야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한 책임감 있는 반응이 가능할 테니까.
그게 같은 조건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지 불행하게 살지를 결정하는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결혼은 참으로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미래가 불안한 것은 오롯이 개인의 탓은 아니다.
시대적, 환경적 영향이 생각보다 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하지 않는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길,
생물은 미래를 예상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을 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품처럼 생산을 해낸 후에 결과적으로 그 중 살아남는 시스템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고 한다.
큰 시스템으로 보자면 나도 그 중 하나고 누구도 자신의 예상대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결과적으로 살아남는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뭣하러 나는 지금까지 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린건지.
결국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한다.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하므로 내가 하는 선택에서 의미를 '찾기만'하면 된다.
적어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수준의 성숙을 하면 된다.
영화 <사울의 아들>에서 사울이 그토록 삶의 의미-그에게는 존엄성-를 찾아 헤매던 것은
미쳐서가 아니라 미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듯이
객관적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삶의 전부인 듯하다.
내가 마치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내 동생에게 바라는 점은,
자신의 선택의 '의미'를 아는 것,
자신의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에 부합되는 선택인지에 대한 '확신'이다.
결과야 평가하는 사람,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기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적어도 스스로 삶을 선택해 나가는 것에 대한 자유로움, 책임감, 자부심은 갖고 살아간다면 좋겠다.
한번에 이루지 못하더라도,
여러 번의 아픈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결국은 나의 가치에 부하되는 행동과 선택을 쌓아간다는 자부심이 나에겐 만족감, 결국 행복이다.
내 동생이 나랑 같은 삶의 가치를 바라진 않을 수도 있으나
적어도 그에게 오롯이 그를 위한 삶의 가치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불어 동생에게 전달하는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나는 동생이 무슨 선택을 하든 그가 가는 길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이 잔인한 시간 속에서 버텨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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