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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엄마와 딸

플라밍고 2006. 9. 8. 17:59

우리나라 70~80대의 삶은 고단했다. 광복 전에 태어나 식민통치를 겪었고, 한국전쟁을 거치고, 분단과 보릿고개 같은 가난을 경험했다. 국가의 민주화 과정 중 독재정치와 4.19 혁명 그리고 그 이후로도 광주민주화운동 등 험난한 민주화 과정을 거쳤다.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 살기란 여간 어려웠던게 아니다. 즉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 앞서는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과 여유를 갖기는커녕 전쟁과 분단,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받은 상처가 깊고 크다. 그래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척 애잔하다. 난 감히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었고, 예측할 수 없을만큼의 상처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애정도 그들의 삶의 방식까지 이해할만큼 크지 않다.

우리 할머니는 82세이다. 할머니는 본인이 80세라고 주장하신다. 아무튼 서류상 82세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늘 티격태격이다. 엄마와 딸인데도 성격은 극명히 다르다. 할머니는 무조건 자식 먼저이다. 우리 엄마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할머니가 소고기를 못 드시는줄 알았다고 한다. 이거 tv에나 나오는 얘기 아닌가? 그래서 지금도 할머니는 맛난 음식을 마음 편히 드시지 못한다. 늘 무언가에 쫒기듯 눈치를 보시며, 꼭 자식들 입에 먼저 넣어주신다. 그래서 할머니가 드시게 하려면 식구들이 먼저 배터지게 먹어야만 한다. 끝없는 할머니의 권유로 억지로 먹어야 한다. 할머니에게 "먹기 싫어요"는 의미가 없다. 할머니에게 먹고 싶지 않다는 의미는 "무척 먹고 싶지만 당신들을 위해 양보합니다."라는 뜻이다.  난 그게 너무 싫다.

우리 엄마는 다르다. 어려서부터 좋은 거, 맛있는 거는 무조건 엄마 차지였다. 아빠와 엄마가 우선이다. 그래서 난 그게 당연하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처럼 살기는 싫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일단 본인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자기 것을 알아서 챙기지 못하면 자기손해였다. 밥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면 굶는 거였고, 아침에 늦잠자면 지각이었다. 하교시간에 비가오면 그냥 맞고 집에 와야했다. 우산은 아침에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이었다. 웬만한 것은 모두 스스로 해야했다. 엄마가 대신 해주신 적이 없다. 다른 친구 집에 놀러가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해주시는 엄마들이 무척 생경했다.  

그럼 3세대인 나는 어떨까? 난 할머니처럼 자신의 행복따윈 상관없다는 듯 자식만 바라보고 살지 않을 것이다. 또 엄마처럼 자식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터이다. 엄마 덕분에 독립적으로 컸지만, 주변 친구들과 사뭇 다른 엄마로 인해 나름 상처도 있다.

할머니와 엄마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어쩔수 없는 모녀지간임이 느껴진다. 그렇게 상반된 성격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는 끈끈함이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참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엄마의 인생관을 결정했고, 내 인생관 역시 엄마의 영향력이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이다. 내가 또 다른 존재에게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싫어서, 내 다음 세대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 결정할 수 없는 시대적 요인이든 개개인의 개별적 특성이든 엄마와 딸 사이에 반복되어 미치는 영향력이 두렵다, 나는. 자신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