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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쓸모없음의 쓸모

플라밍고 2014. 5. 22. 01:01

 

<에드워드 호퍼, morning-sun, 1952>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빈둥거리고 있다.  

단점은 닥쳐서 몰아치듯 해내느라 규칙적인 생활이 힘들다는 것이고,

장점은 허비하는 동안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왜 장점이냐면,

보통의 경우 해야할 일들에 파묻혀 시간을 쪼개어 쓰다보면 공허함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허비하며 빈둥대는 동안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잘 보인다.

 

나는 아직도 쉬고 싶은가보다.

아직도 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남아있나 보다.

하지만 피로함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고 해도 외롭긴 하다.

일에 치대어 한시라도 쉴틈없이 정신없이 조급하게 앞만을 달려가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그러니 장점이 맞다.

 

상담 공부를 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나에 대해서 깨달아 지는 점들이 있다.

내담자의 경험에 대해 문제론적인 접근을 하다가 문득 나의 문제의 원인과 역사를 알게 되기도 하고,

내담자의 어려움을 치료하기 위한 개입 전략을 고민하다가 문득 나를 치료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역시, 느닷없이 알았다.

내담자에게 직접적 안내, 조언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상담자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상담자의 직접적 지시가 내담자를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고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답했다.

 

"의존하지 않고서 basic trust가 생길 수 있나?"

 

불현듯 꺠달았다.

나에게는 쭉 관계에 대한 '불신'의 주제가 있었다.

난 항상 의존은 나쁜 것이라 생각했고, 의존하지 않으려고 애써왔고, 독립적/자율적이고자 했다.

의존하지 않았고 더불어 믿지 않았다.

사람은 의존하는 대상을 믿는다.

믿어야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존한 다음에 믿는다.

아이가 엄마를 믿어서 의존한다기보다는 의존할 수 밖에 없던 대상을 믿는 것이다.

내게서 결핍은 믿음이 아니라 먼저 '의존'이었다.

난 의존 혹은 의지하지 않았기에 믿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나의 대인관계의 문제를 한번에 꿰는 원인을 찾았다.

 

때떄로 치사스럽고, 때때로 구차하더라도

의지할 수 있다면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수 있다면 그정도 쯤이야 넘어가도고 남을 일 아닌가.

참 늦되다.

늘 그렇다.

 

어차피 혼자서 부족한 것 투성인데,

혼자서는 어려워서 쩔쩔매는 것 투성인데,

너무 어려워서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으면서,

도와달라 얘기한 적 없다.

 

나의 결핍의 시작을 알았다.

난 유별나게 외로움을 안 타는 사람이 아니고,

혹은 특출나게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고,

단지 치사하고 구차해서 같이 있어달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모자란 인간일 뿐이다.

 

훨씬 단순하고 명료하다.

편하고 자유롭다.

의지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면 진심으로 사람을 믿을 수도 있겠다 싶다.

자유롭게 나의 마음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겠다 싶다.

 

정말 누구 말대로 내가 이상하리만치 긍정적으로 변한 것인지는 몰라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