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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절정, 이육사

플라밍고 2011. 6. 6. 00:33


 

절정(絶頂)

                                                       이육사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고등학교 때 문학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할 때 시를 읽어주시곤 했다. 
친구들끼리는 문학선생님이 참 낯간지럽고 오글거린다고 키득댔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딱 질색이라 수학 문제만 풀곤하던 아이가
그 문학선생님 덕분에 한동안 시만 읽었다.
혹시나 친구들이 시 읽는다고 수근거릴까봐 언어영역 문제집 푸는 걸로 가장하곤 했다.
덕분에 언어영역 문제집 엄청 풀었다.

당시 가장 좋아하던 시가 '절정'이다.
짧아서 외우기도 쉽고,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하필 논문 쓰는 시기에
등 떠밀린 꼴로 교육분석을 시작했는데
이것 참...
속 시끄럽다.

난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서, 다양한 가능성이 싫어서
혼란 속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수학을 좋아했다.
혼란과 무질서의 기간이 곧 지나길 바란다.  
어떻게든 규칙과 패턴을 찾아내서 안정을 되찾고 싶다. 

그런데 한동안은 안정을 찾기 힘들 것 같다. 
미루고 미루고 최선을 다해 미뤄서 
늘 나를 벼량 끝으로 내몰아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를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서릿발 칼날진 고원에 서게 한 것이 다이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가도
이러저런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내 아무리 생각한들 속 시끄럽긴 매한가지다.

갑자기 성함도 잊어버린 문학선생님이 읽어주시던 '절정'이 생각났다.

'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