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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 여자는 행복하지 않다.

플라밍고 2006. 8. 25. 12:08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 아마 그여자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행이 무엇인지 알 만큼은 배운 여자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 여자는 결정적인 것을 모르는게 흠이다.  

그 여자가 기억하는 행복한 순간은 짧다.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안될만큼 가물가물한 어린시절 정도이다. 혹은 지속되지 않은 짧은 기간, 정말 '순간'에 행복했다. 그 여자에게 행복은 지속적이고 영구한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행복' 또는 '불행'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 여자는 덜컹거리는 고속버스 맨 뒷 좌석에 앉아 읽은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요즘들어 자주 생각한다. 20살 그녀는 그 모순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20살의 그녀는 처음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그 누구의 모순도 이해했을리가 없다.

소설 '모순'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모와 엄마는 매우 상반된 인생을 살고 있다. 힘든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고난을 겪고 난 후 더욱 강해지는 엄마는,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친다. 평탄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이모는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개인의 불행을 절대적인 수치로 측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삶을 포기할 만큼의 고난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런 개인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할까?

겉으로 보기에, 한 사람이 누린 안란함으로 볼 때, 이모의 삶은 엄마보다 훨씬 행복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이모는 남편과 자식이 인생 최고의 가치이다. 대안이 없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할 길은 가족 뿐이다. 그래서 가족의 무관심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엄마는 먹고 살기에 바쁘고 매일 들이닥치는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기에 바쁘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므로 외로움은 뒷전이다. 자신은 물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그녀는 그래서 죽을 수가 없다. 엄마의 삶은 고단하지만, 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주인공은 이모의 삶을 선택한다. 치열함 보다는 안락함을 선택한다.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치열해야만 하는 삶보다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평탄할 삶을 선택한다.

그 여자는 그 '모순'을 이해한다. 그러나 더이상 20살은 아니지만, 치열함이 두렵지는 않은 여자다. 행복하지 않은 그녀가 다행스러운 유일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