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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천년 먹은 고양이

플라밍고 2006. 8. 9. 02:47
#1. 밤에 손톱을 자르면, 천년 먹은 고양이가 그 손톱을 먹고 나랑 똑같은 사람으로 변한다는 전래동화가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읽었는데, 당시 어린 나에게는 꽤 무서운 이야기였다.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고양이가 내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면, 내가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엄마, 아빠가 나를 믿지 않으면 어떡할까, 고민했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상상의 고양이에게 전의를 느꼈다. 천년 먹은 고양이가 아무리 얍삽해도, 나임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내 자리를 찾겠다고 의지를 불살랐다. 고양이 따위에게는 지지 않으리라.

그러다 천년 먹은 고양이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미쳤다. 고양이로 사는게 얼마나 힘들면, 내 흉내를 내면서까지 사람이 되고 싶을까. 혹은 천년 먹은 고양이도, 자기도 모르게 내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결국 어쩌면 나도 천년 먹은 고양이가 아닐까. 진짜 이 집 딸은 어디선가 울고 있는게 아닐까. ㅡ.ㅡ

그렇게 시작한 상상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손톱을 꼭 밤에 자른다. 내 운명을 시험하고 싶은건지 모른다.


#2.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접고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했다. 당시 누군가를 피해 미니홈피를 접었으나, 무엇이든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내 속풀이 할 작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초기의 포스팅은 발가벗은 글들이었다. 알게모르게 이웃이 생겼고,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 내가 쓴 글이 조금씩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알게되면서 가끔씩 엉뚱한 상상을 했다.

온라인 상에서 만나는 그들이 정말 존재하는걸까? '트루먼 쇼'에서처럼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게임은 아닐까. 결국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맞다, 내가 의심이 많다.

이번에도 결국 누군가를 피해 네이버에서 티스토리로 옮긴 꼴이다. 전과 다른 것은 발가벗은 글이 잘 안 써진다는 것이고, 같은 것은 다른 블로거들의 존재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