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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영화

<영화> Doubt

플라밍고 2009. 2. 20. 01:47



훌륭하다.

<다우트>는 상당히 우아하고 지적이다. 영화의 주제는 물론 극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 또한 지적이다. 수많은 의심 속에서, 감시와 처벌을 의무로 여기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자유로운 플린 신부가 격돌한다. 그리고 그 둘의 격돌의 틈바구니 속에서 확신없이,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제임스 수녀가 가냘프게 흔들린다.

이들의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그 에너지가 스크린 밖으로 뿜어나와 관객을 압도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알로이시스 수녀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이야 말할 것도 없다. 플린 신부 역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궁지에 몰린 자의 치열함과 궁지에 몰아 넣은 알로이시스 수녀에 대한 공격성 그리고 도널드에 대한 애정과 자상함, 제임스 수녀에게 자신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간절함 등 다양한 감정표현을 훌륭하게 넘나든다. 또한 제임스 수녀 역의 에이미 아담스는 완전히 순수하고 의심없는 깨끗한 얼굴에 플린 신부가 죄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알로이시스 수녀의 무자비한 감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플린 신부를 아무런 증거없이 의심하고 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의 고뇌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격돌 속에서 흔들리는 제임스 수녀의 혼란과 고뇌는 관객마저 흔들리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연기를 뒷받침하고 캐릭터를 완성하는데에는 연출력도 만만치가 않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일관되고 흐트러짐이 없지만 알로이시스 수녀가 의심을 품고 플린 신부를 몰아내려고 작정할 때 카메라는 사선으로 기운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편협함'을 나타낸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세 명의 인물이 교장실에서 모인 씬이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그리고 제임스 수녀의 에너지가 폭발하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교장석은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권력 관계를 나타내고, 블라인드를 통해 쏟아지는 햇빛은 플린 신부의 죄를 비추는 듯 하다. 중간에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긴장감을 극대화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제임스 수녀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시나리오 역시 훌륭하다. 대사하나 장면하나 의미가 있다. 도널드의 첫 대사는 "나 뚱뚱해 보여?"이다. 플린 신부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데 이보다 더 의미있는 대사가 있을까. 알리시아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의 순진무구한 태도에 대해 재빨리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한 간편한 방법이라고 비난한다. 플린 신부는 설교를 통해 알로이시스 수녀의 편협함과 무자비한 도덕적 확신을 공격한다. 도널드의 엄마는 알로이시스 수녀의 옳음에 대한 확신에 대해 과연 무엇을 위한 의심과 확신인지 물음을 던진다. 관객 역시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는 삶의 중요한 가치가 다르다. 변하려는 사람과 변하는 것은 없다는 사람의 충돌이다. 진실과 사실의 충돌이다. 마지막 알로이시스 수녀의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많은 의심 속에서, 금욕하며 감시와 처벌을 의무로 살아가는 알로이시스 수녀를 무엇이 서럽고 힘들게 하는 것일까. 알로이시스 수녀는 아무런 중거없는, 함께 확신을 가져줄 사람도 없는, 자신만의 확신 속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다. 그녀의 의심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그것이 그녀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다. 솔직히 나는 제임스 수녀처럼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그를 통해 과연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오랜만에 우아하고 지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