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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영화

<영화> 워낭소리

플라밍고 2009. 1. 23. 20:11





느닷없이, 그냥 극장에 가고 싶어서 친구따라 나서서 본 영화다. 
할아버지와 소의 사랑이야기라고 얼핏 들은터라 재미있겠냐 싶었는데, 재미있었다.
원래 TV 다큐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인간극장에서 봤다면 지금만큼 집중해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싶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이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참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한 편으로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한 평생 농사를 지으신 할아버지 손이 클로즈업 된다. 그 손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 손 때문에 나는 더없이 안전하고 평안하다.   



#. 할아버지
이 영화는 다큐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의 관계를 통해 그들의 삶을 그린다. 다큐라는 장르가 참으로 적절했다. 할아버지에게 소는 단지 부리는 가축을 넘어 그의 삶의 기록이다. 소와 함께 자식 아홉을 키워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소와 함께 들에 나가 '일'을 했다. 할아버지의 삶은 들에 있고, 그때마다 소와 함께 했다. 할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희생한 그 시간과 공간에 소가 있었다. 소는 할아버지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부인인 할머니와는 다르다. 소는 말이 없는 동물이라 할머니처럼 불평, 불만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워낭소리와 "음메~"로 밖에는 전할 길이 없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불평에는 대답이 없어도 소의 워낭소리에는 눈길을 주시는 이유이다. 소는 할아버지에게 불평을 하지도 않고, 할아버지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함께 할 뿐이다. 소는 할아버지 인생을 판단없이 지켜봐준 목격자이며 동반자이다. 이보다 훌륭한 동반자가 있을까... 40년을 함께 한 할아버지와 소의 발걸음을 보여 준 장면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 할머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야속하다. 다리도 성치 않은 노인네가 극성맞게도 일을 해대니 할머니까지 고생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싱싱한 영감' 만나서 농약치고 기계일 하고 살았으면 편안했을텐데, 영감 잘못 만나서 소 먹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바쁘다. 귀도 잘 안들리는 영감이라 불평도 큰 소리로 우렁차게 해야한다. 연신 "팔아!"를 입에 달고 사는 할머니의 마음을 백번 헤아리고도 남는다. 그래도 마음씨 고운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소를 먹일 쇠죽을 끓이고, 소의 노고를 위로하고, 소에게 막걸리를 한~ 사발 주신다. 곧 팔려갈 소를 향해 눈물도 보이신다. 소때문에 고생이 끊이질 않는다고 불평을 해도 그 소가 자식 아홉을 키운 고마운 소라는 것을 모르지 않다. 그 소 덕에 몸이 성치 않은 할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다. 한 쪽 다리가 성치 않아 매일 '"아파"를 입에 달고 사시고 머리가 아파도 농삿일을 쉬지 않는, 움직여야 산다는 할아버지를 곁에서 극성스럽게 지키는 할머니는 그저 할아버지가 서운할 따름이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 찍을 때, "웃어!"라고 우렁차게 외치시는 할머니가 참 다정하고 든든하다. 


 

# 소
영화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기도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할머니가 소를 잃은 할아버지가 안쓰러워서 말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죽은 소를 말해서 뭐하냐며 피하시지만 40년을 매일같이 함께 한 소를 잃은 슬픔이 쉽지 않다. 할아버지의 삶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워낭을 매만지는 그 손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준다.
소는 평균 15년을 산다는데, 이름도 없는 이 소는 40살이다. 소 먹인다고 농약도 안 치고 농사를 지은 할아버지의 정성인가 보다. 틈만나면 동네방네 집을 알아서 찾아가는 소라고, 똑똑한 소라고 자랑하시는 할아버지의 칭찬 덕인가 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바닥에 웅크리고 괴로워하는 중에도 늙은 소의 워낭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할아버지의 사랑때문인가 보다. 할머니 말씀대로 주인 잘못 만나서 뼈빠지게 일하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그리 오래 사는걸 보면, 무언가 있나 보다. 





# 워낭소리
'워낭소리'는 감독의 메시지가 분명한 다큐이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존경과 애잔함이 카메라에 묻어난다. 성치 않은 한 쪽 다리는 앙상히 뼈만 남았지만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 들에 나가 일을 하는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아버지이다. 그리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 가장 좋은 수확물을 자식들에게 보내시는 그 마음이 우리들의 아버지이다. 나는 그들 덕분에 그들처럼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할 수 있다. 그들 덕분에 나는 보다 나를 챙기며 나를 돌아보며 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다. 그러니 철없고 이기적인 자식보다야 소가 낫지 않겠는가. 소를 팔아버리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사시라는 공허한 효심보다야 40년을 함께 한 워낭소리가 낫지 않겠는가.

감독은 상황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하지만 영화의 시선이 진작부터 상당히 감동적이고 따뜻해서 조금은 촌스럽지 않나 싶은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내가 무관심했던, 알지 못헀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러나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소처럼 일해 온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좁디 좁은 내 세상에서 바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해준 느닷없는 선물이었다. 너무나 재미있게 본 영화 '렛미인'이나 '바시르와 왈츠를'도 포스터를 찾아가며 포스팅을 하게 만들지는 못했는데, '워낭소리'가 오랜만에 리뷰를 쓰게 한다. 연신 뉴스에서 보도되는 폭력들에 화가 나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비상식적인 사건들에 허망해하던 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들이 있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