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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여행

휴식

플라밍고 2016. 4. 9. 23:51

 

 

 

#1.

일단 쉬고 본다.

할일은 태산이지만 할일은 늘 산더미일테니 틈틈이 쉬어야 한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운동을 거르지 않고,

아무리 평일에 허덕여도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홍삼을 먹어도 녹용을 먹어도 비타민 주사를 맞아도 예전만큼 팔팔해지지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아무 일도 없는데 기분이 좋고, 웃음이 나고, 세상이 반짝거리는 것 같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딱 봄이 왔다는 증거다.

봄을 만끽하기에 딱 좋은 곳을 찾아서,

어젯밤을 새고 졸린 눈을 비비며 3시간을 운전해서 왔는데,

정말이지 완벽하다.

 

이토록 완벽한 휴일이라니.

어제 상담을 말아먹고 마음에 짐이 무거웠는데 좀 낫다.

 

 

#2.

헤겔에 따르면 정신이 "힘"이 되는 것은 오직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곁을 머무를 때"뿐이다. 이러한 머무름이야말로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역전시키는 마법"이다. (중략) 긍정사회는 부정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대하는 법, 그러한 감정을 형식에 담는 법을 잊어버린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의 깊이, 위대함, 강인함은 바로 부정적인 것에 머무름으로써 나온다. (한병철, 투명사회, 20-21)

 

상담자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내담자가 부정적인 것에 머무를 수 있도록 내담자의 고통을 버텨냄으로써 내담자에게 고통을 대하는 방법을 모델링하는 것이다. 목표는 내담자가 창조적 고통을 기꺼이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담이 철학과 다른 점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머무르게 할 것인가'이다. 그래서 상담은 교육학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곁을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스스로 깨닫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몰된 부적 정서에서 살아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도움이 필요하고 우린 모두 때떄로 도움이 필요하다. 그게 나의 전문성이라면 적어도 나는 창조적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나의 부정적인 것을 응시했고, 창조적 고통을 경험했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문득 현대상담이론 강의 중 "극복한 사람이 오히려 아직 극복하지 못한 사람을 더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할수 있다.", "너는 특별하다."라는 근거없는 피드백은 오히려 상대의 부정적인 것을 버텨내지 못하는 반사적인 반응이다. 스스로 좋은 의도를 가지고 격려와 지지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하고자했던 상담자라면 참으로 억울하겠지만 이또한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증거고 전문가로서의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피곤할수록 상담 중에서도 쉽게 반응할 때가 있다. 구체적인 증거와 가설이 부족한 긍정적 피드백이 그것이다. 최근 상담에서 느낀 빈틈은 아마도 쉬운 반응에 대한 아쉬움이었던 것 같다. 좀 더 버텼어야 하는데, 버티기가 자신이 없어서 비겁하게 긍정적 피드백 뒤에 숨어있기도 했다. 그게 어제 상담을 말아먹은 첫번째 이유이다.

 

휴식은 나를 돌아볼 여유를 만들어줘서 좋다.

꾸역꾸역 다음 일을 해치워야하는 일상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점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내가 속한 커리큘럼의 효과 중 하나이긴 하지만

내가 나를 돌아볼 여유를 내는 것 또한 나의 일을 위해 책임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리라.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산더미처럼 쌓인 할거리를 모르는 척 하고 빈둥빈둥 거리는 중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