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
블로그를 오프라인상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었다. 실수다.
고등학교 3년 때,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매일 스포츠 신문을 외우다시피하던 그 친구는 말이 없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나는 주변에 별 관심이 없고 새로운 사람에게 특히 관심이 없었는데 그 친구는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다. 전혀 친절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진실된 눈마주침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그 친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친구는 내 눈빛만 보고도 나의 기분과 진심을 알아주던 유일한 친구였다. 처음으로 마음놓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다. 휴식처였다. 그러나 사람은 변하고 관계는 더 빠르게 변했다. 난 안타깝게도 그 친구의 휴식처는 되지 못했다. 염치없게도 지칠 때마다 그 친구의 그 때 그 눈빛을 생각한다.
머릿속도 텅텅비고, 감성은 바닥이고, 에너지도 남아있질 않다. 지치고 메마르다. 시간에 쫒기는 것이 너무 싫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의 행동도 사고도 반추할 시간이 부족하다. 늘 무언가가 빠진듯 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다. 부족한 결말이 견딜수 없게 짜증스럽다. 벌려 놓은 것은 많고 제대로 하는 것은 없다. 게다가 벌려야 할 일이 아직 많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 선택은 늘 자신없다. 그냥 별일 아니라는 듯, 하하 웃어버리고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에 열등감을 느낀다.
인생 혼자 가는거라지만 가끔은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봐야 결국 선택을 피할 수는 없고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한다지만 격려가 무척 필요할 때가 있다. 무턱대고 아무나 붙잡고 나 좀 격려해달라고 할 판이다. 눈을 번득이고 낙담한 사람을 찾아 격려하면서 내 낙담을 달래볼 수도 있지만 싫다. 대체 특정한 무엇이 날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지, 왜 화가 나는지 곰곰히 생각하기도 싫다. 비합리적인 신념이든 자기파괴적인 행동이든 피해의식이든 허약한 자아든 분리와 통합의 실패든 그런 거창한 원인을 찾아내기도 싫다. 알게뭐람.
그깟 돈을 벌 이유도 없는 입시도 없는 약속도 없는 의무도 없는 내게 부담주는 그 어떤 것도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마음 편히 '생각'을 하고 싶을 뿐이다. 모든 계획에서 벗어나 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을 '생각'이 필요할 뿐이다. 내가 그럴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할 뿐이다. 중요한건, 낙담하고 지쳐서 결국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위로'뿐이다.
결국 나는 또, 내가 의도한 대로, 아주 영리하게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