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분석의 과정

플라밍고 2021. 7. 24. 14:32

#. 문제 행동
늘 그래왔듯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죽자고 일하는 중이다. 매년 올해가 그 어느때보다 심각하다 하면서 매년 갱신 중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배우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돈도 벌린다. 미친듯이 일을 하면서 나의 경험을 회피함에따라 쓸데없이 자기통제를 잃은 채 꼴사납게 구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대신 진짜 경험을 회피하는 동안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가짜 경험을 만들어 판타지를 끌어안고 사느라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여기까지 나의 부적응 행동의 악순환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내가 이렇게 악순환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아주지 못했다.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누구나 문제행동 이면에는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 두려움
내가 죽자고 일하는 것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이 두렵다. 매순간 안간힘을 다해 나의 쓸모를 확인하고자 애를 쓴다. 쉼은 즐거움이 아니라 한심함과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고통에 가깝다.

연애가 그렇다.

 

연애는 나를 한심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일해야 할 시간을 뺏는다. 연애하느라 해야할 일들을 놓치고, 이러다가 내가 한심하고 무능해져서 쓸모가 없어질까봐 불안해하느라 관계로부터의 충만함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연애는 재미있지만 무쓸모의 근원적인 공포에서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되려 나를 무쓸모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일등공신이다. 나는 무쓸모의 공포만 알았을뿐 쓸모없음을 버티는 방법을 몰랐고, 쓸모없음의 쓸모를 몰랐기에 관계를 견디지 못했다.

나는 왜 무쓸모를 두려워하는가.

 

이것이 나의 핵심적인 역사이다. 나는 무쓸모에 대한 평가적인 시선을 내면화하였다. 쓸모없음에 대한 비난, 실망, 절망, 분노, 불안을 배웠다. 쓸모에 대한 평가의 시간들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감각에 새겼다. 누군가의 쓸모를 평가할 여유도 없이, 나는 오롯이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혹시나 나를 쓸모없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매우 예민하게 발견하고 끊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쓸모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쓸모없지 않음이 확인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불안을 배웠다. 상징적으로는 내게 쓸모없음은 곧 죄악이다.

그러나 나는 늘 죄를 짓는다.

 

나는 쉬고 싶고, 편하고 싶고, 즐겁고 싶고, 기대고 싶은데, 나에게 이는 통제를 잃은 상태이고 무쓸모의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의 욕구가 곧 죄악이다. 뜨겁게 원하다가도 금방 차갑게 돌아서는 행동패턴의 이유이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수록, 취할수록 혹독하게 나를 벌주고야 만다. 원하는 것을 애써 부정하느라 힘겹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죄책감에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그 죄책감을 걷어내고자 스스로를 벌하고나서는 억울하다고 징징댄다.

나는 그 쓸모없음의 대상을 사랑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사람이었다. 미래의 쓸모를 위해 현재의 무쓸모를 희생하는 재주가 없었다. 쓸모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쓸모없음에도 허용적이었고, 실수에 관대했으며 변화에 유연하였다. 그래서 나는 상처받았다. 그녀는 변덕스러웠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나의 기대를 쉽게 져버렸다. 그녀는 자유를 꿈꿨지만 그녀의 남편은 쓸모를 지키느라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자유를 잃은 그녀는 절망했고, 딸에게 소홀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은 늘 나를 실망시켰기 때문에 그 사랑이 미웠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로부터 미움을 배웠다. 상징적으로는 내게 쓸모없음은 미움이다.

그래서 나는 늘 화가 나있다.

 

나는 쉬고 싶고, 편하고 싶고, 즐겁고 싶고, 기대고 싶은데, 나에게 이는 통제를 잃은 상태이고 무쓸모의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쓸모가 없고, 쓸모없음은 나를 실망시키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미워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화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원하면 원할수록 더욱 화가 난다. 관계에서 그 무엇에도 기대하지 않고, 그 무엇도 간절히 원하지 않으며 거리를 두는 이유이다. 나를 간절하게 만드는 것일수록 화를 내고 경계한다.

그러나 사실은 나의 사랑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중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로는 부족했다. 무능력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의 쓸모를 아무리 증명해내도 내 쓸모가 내 사랑을 자유롭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항상 쓸모를 위해 애썼으나 번번이 나의 무쓸모를 확인하고는 절망한다. 사실은 나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절망한 것이다.

나는 이제서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사랑을 할 수 있을 뿐 누군가를 자유롭게 해줄 수는 없다. 오직 본인만이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것임을 이제 조금 알겠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해주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사랑이 지치고 피곤했던 것이다. 나는 사랑하면서 늘 절망했고, 절망에 지쳐서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구나.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하지 않는 수밖에는 없었나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구나. 비록 스스로를 고립감에 가두긴 하였으나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그간 애썼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면 됐다.

#. 소망
첫번째, 쓸모없음의 쓸모를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쓸모없음을 용서하는 것.
첫번째, 사랑하는 나를 미워하지도 않고 벌하지도 않는 것.
첫번째, 상대의 호감도 나의 호감도 모르는 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첫번째,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것.
첫번째,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에 감사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