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인생의 황금기

플라밍고 2021. 4. 23. 16:21

30대를 온전히 커리어를 쌓는 데 투자했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편이다. 

지금은 더이상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고, 무언가를 더 이루지못해 안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제서야 그간 놓친 것들에 대해서 애도할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그새를 못참고 벌써부터 여름방학을 특강으로 가득 채워놓았지만, 

내가 감정적인 상태를 회피하려는 시도임을 분명히 안다. 

 

이전에는 감정적 접촉에 대한 무의식적 회피반응이었다면,

지금은 오랜 습관같은, 자동적인 대처반응으로써 조금만 노력하면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조절할 수 있다. 

 

정보를 교환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는 일 없고, 

상담이나 수업 장면이 아닌 이상 그 누구에게도 질문하지 않으며,

물건을 쉽게 잃어버리면서도 굳이 애써 찾지 않는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감정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고난 기질상, 

감정적으로 오르내리막이 있는 편이 아니고, 

사실과 정보에 더 머무르는 편이므로 대단히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혹시나 내가 쓸데없이 허송세월을 할까봐 걱정되어,

굳이 경험에 대한 접촉을 막을 이유가 없어졌기에, 

기꺼이(?) 그간 미뤄둔 '상실'에 대한 애도 작업을 꽤 적극적으로 하고자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현재든 과거든 닥치는대로 상당히 적극적으로 질척댈 예정이다. 

 

보통은 자연스러운 작업인데, 

워낙 부자연스럽게 묶어둔지라 굳이 의식적으로 시동을 거는 중이다. 

온전히 나 하나만 챙기면 되는 인생인데도,

손도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들고, 보통 연악한 것이 아니다. 

 

나의 분석가는, 
끈질기게 그에게 집중하였고,

내가 그의 손을 놓았던 경험에 대한 의미를, 

그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고 해석하였다. 

 

나는 그가 '깊은 유대감' 또는 '나의 청춘'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분석가는, 

나에게 그는 상징이 아닌 그 자체로 대체불가능한 '존재’라고 해석하였다. 

 

나의 분석가의 해석은,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이론적 설명을 가능하게 하지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할 것은 없다. 

인생은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으니까. 

 

이론적으로는, 

당시의 나에게는 그래야만 했던 타당한 이유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던 것이

지금은 더이상 적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은,
어떻게 누군가에게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느냐인데,
(물론 이또한 어느정도는 이론적 설명이 가능하다.)
그 원리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더이상 내 경험을 모르는 척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라는 것,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정해야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