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
오로라를 보고 싶은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신비로울까.
지난 주 유명한(?) 집단상담에 다녀왔다.
수십만원을 내고 30시간 동안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러 가는 것이 뭔짓인가 싶은데,
늘 그렇듯 그 시간의 마지막에는 치열하게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려는 그들의 시도가 감동으로 남는다.
그 시간과 공간이 특별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으나 집단상담은 내가 좋아하는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나의 오래된, 그 알 수 없는 생경한 느낌이 떠올랐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이해할 수 없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그 생경한 느낌 앞에 속수무책 당해왔다.
딱히 어떤 언어로 설명하기엔 복잡하고 모순적인 느낌인데,
그 느낌을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정확한 지명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관광지로 유명한 호주의 어느 해안이었던 것 같다.
바람이 몹시 불고, 날이 좀 어두웠는데,
절벽 위에서 해안을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너무나 무섭고, 희안하게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도 이상하게도 그 자리를 뜨기가 어려웠다.
신비롭고 이상한, 벅찬 경험이었다.
울룰루 투어할 때에도,
울룰루 바위 둘레를 걷는데 어느덧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 드넓은 사막을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도 해변에서 느꼈었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고,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벅찬 이해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꼈다.
그래서 돌아서지 않고 가던 길을 가는데,
급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지면서 커다란 울룰루 바위에 수많은 물줄기가 무섭게 쏟아지듯 흘러내렸다.
그 신비함은 지금도 생생한데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실제 경험은 아니지만 그 생경한 느낌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이다.
어딜봐도 수평선이 보이는 잔잔한 망망대해 위 조각배에 놓인 느낌.
숭고함.
그 단어가 가장 가깝다.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준비할 수 없이 감각에 꽂히는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아름다워 물러나고 싶지 않은 벅찬 감동,
압도적인 크기에 내 존재가 보잘 것 없어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욱 자유로워지는 경험.
마냥 좋지도 마냥 싫지도 않은 익숙해지지 않는 생경하디 생경한 느낌.
집단 리더는 그것이 나의 felt sense일거라 했다.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나는 이 생경한 느낌을 받았었고
그 이후로도 맥락없이 종종 이 생경한 느낌이 찾아와 맥없이 주저앉곤 했다.
지금까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왜냐하면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집단상담을 통해 이 생경한 느낌이 어쩌면 나의 근원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는 awareness가 생겼다.
그게 심리적이든 영적이든 그 무엇이든
나에겐 늘 함께였으나 늘 생경한 '나'인 것 같다.
이 경험이 보다 명확해지면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든다.
여전히 어떻게 명확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그 느낌에 보다 다가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 나를 제대로 깊이 이해받는 것이 그 시작인 것 같다.
이번 집단상담을 통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생경함을 처음으로 이해받은 것 같다.
그것이 책에서만 보던 자신을 자각하는 시초임을 새삼 깨닫는다.
아주 미세하더라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고 싶다.
felt sense에 근접해 보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