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take on me, take me on

플라밍고 2016. 6. 17. 10:37


 
박사논문 프로포절을 끝냈다.
 


#1.

올해들어 생기를 잃었다는 피드백을 여러번 들었는데,
박사논문 프로포절을 준비하면서 몇주간 몰두했더니 생기가 돋는다.  
 
코스웍 중에는 생각할 틈도 없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수료하고 나서 급작스럽게 생긴 여유가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한가한 적이 있었나...
여유, 여유를 바라고 바랐는데,
정작 여유가 생기니 낯설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져서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Doing 밖에 모르는 인간인지라 Being을 어떻게 하는건지 몰라서 벌어지는 상태인 것이다.
결국 Being은 실패했다.
어떡하겠나, 이렇게 생겨먹은걸... 차차 알아가겠지. 결국 알게 될거다.
 
어쨌건 몰입할 것이 필요했다.
공부든 사람이든 일이든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프로포절은 안성맞춤이었다.
 















#2.

프로포절 준비하는 몇 주가 재미있었다. 
모든 연구에 몰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내 삶에서 시작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과정이라 다른 연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모든 것을 프로포절 뒤로 미루고나니,
직장에서도 해야할 일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급작스럽게 생겨서 짜증이 날만도 한데,
사실 일거리가 생겨서 좋다. 
재미있을 것 같다.
 
새롭게 도전할 것들이 생겨서 좋다.
성취할 것들이 있어서 즐겁다.
 
또 의욕에 넘쳐서 쓸데없이 고퀄을 지향하게 될까봐 살짝 걱정이긴 하지만
아직 몸사리면서 일할 나이는 아니니까.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아님 마는걸로.
 















#3.

난 어른들이 좋다.
프로포절 심사를 받으면서 교수님들의 피드백 하나 하나를 들으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조명해주고,
내가 아직은 깨닫지 못하지만 가야할 방향을 제안해주시는
교수님들이 계셔서 든든하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부족하고,
어떤 반응이 적합한지 몰라서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시는 분들,
나를, 내 삶을 더 온전하게 만들어 갈수 있도록
든든하게 기꺼이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든든하다.
 
내 삶에 여러 어른들이 계시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임을 그들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루고 살고 있음을 안다.
그들을 담아 나도 어른이 된다.
 
















#4.

문제는 그들의 성숙함을 내 또래에게서도 기대한다는 거다.
그분들도 내 나이 때 그런 성숙함을 완성치 못하셨는데,
내 또래 남자들에게 그런 성숙함을 기대하다니 마땅치도 않다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아는데...
이 기대수준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외면은 젊고 내면은 성숙한 인간형이라...
미쳤나보다.
젠장,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