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선을 넘었다는 것은,

플라밍고 2016. 5. 18. 18:29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

 

 

 

나는 선을 넘었다.

 

선을 넘었다는 것은,

내가 어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애쓰느라 자연스러움을 놓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괴로워하는 특정 정서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상황을 왜곡하여 바라보고 해석하고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나의 왜곡된 판단과 해석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 상태.

이것이 선을 넘은 상태이다.

 

나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선을 넘어 터널 속으로 진입했는데,

이 터널이 얼마나 길고 어두울지는 가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내가 여기서 얼마의 시간 동안 어떻게 헤매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어쩔 수 없지, 가보는 수밖에.

 

내가 일상에서 가장 공들이는 것은,

최대한 나의 정서/사고를 단순화하고 안정화 시키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이 내게 아무의 편도 되어주지 않는다고, 왜 특별하게 대해주지 않느냐고 애정어린 불평을 하지만

나는 누구의 삶에도 개입할 의사가 없고,

그 누구도 내 삶에 개입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게 단순화/안정화 작업이다.

 

그러다보니 재미가 좀 없다.

가깝다는 것은 삶의 조각을 나누는 것인데,

삶의 조각을 나누다보면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지고 의지하고 싶어진다.

왠지 난 그것을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의 삶에 개입을 할 수 있나,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에게 나를 봐달라고 요구할 수 있나,

그건 부적절한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믿을 수 없을만큼 덜떨어진 생각이다.

 

이제 좀 재미나게 살고 싶다.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하게 살고 싶지만

더불어 재미나게도 살고 싶다.

요구하고 요구를 들어주면서,

기대도 하고 좌절도 하고 설레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멍청하게도,

좌절하기 싫어서 기대도 안했는데, 그러다보니 재미를 잃더라.

재미를 찾아 기꺼이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하고 아프기도 해야함을 또 뒤늦게 이해한다.

물론 머리로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설마 모를라고.

하지만 매번 깨닫는 건데, 머리로 아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기꺼이 물러서지 않고 헤맬건데 즉, 돌아오가지 않을 작정인데,

그 이유는 적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건 즐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아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몰라주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해하고, 때로는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것에 실망하면서 살고 싶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포로포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담백하지만 재미있게, 생기있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