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Bad!
Edward Hopper, Room in New York, 1932
예전에 어렸을 때 친구들과 스킨십에 대해 얘기하면서,
장난처럼 나는 손잡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 이유는 손을 언제 어떻게 놓아야할지 고민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상대를 더이상 원치 않게 되었을 때 가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거리를 좁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
나도 그럴진대 그 사람도 그렇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노력하는 것은,
1) 상대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맞춰주는 것.
2-1)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defence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반응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
2-2) 나를 드러내도 상대방이 좋다하면 금상첨화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가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음을 허용하는 것.
1번만 하게되면 관계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공허해지고, 지치고 억울해질 수 있다.
2번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번이 어렵다.
나도 그렇다.
솔직히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상대 혹은 나의 잘못을 꼬집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런 경험을 한다'를 알리는 것이다.
나는 특히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이 부분이 어려운 이유는,
1) 자신의 경험을 '생각'하지 않고 '느껴'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2) 자신의 의도와 달리 자신의 부적정서를 상대에게 부적절하게 표현하여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3) 상대방에게 부적절한 정서표현을 했을 때, 상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에
정도로 요약된다.
하지만 결국 관계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 관계에서는 내가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단서를 모으기가 어렵다.
나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고,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는 데는 무한한 경우의 수가 있다.
그 중 어떤 반응이 진짜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관계도 그 사람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고질적인 이슈인 '불신'은 결국 나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임을 새삼 깨닫는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만을 가늠하려고 하는 태도가 늘 관계를 망쳤다.
상대방에겐 전혀 알리지 않고 나 혼자 이리저리 재보고 혼자 서운하고 지치고 팔짝 뛰다가,
결국 혼자서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다.
더이상 그러지 않기로 한다.
타고난 단순함으로 계산도 제대로 못할 뿐더러 계산한다고 한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더불어 나는 예전보다 내가 더 마음에 들고, 이만하면 괜찮은 것들을 발견해나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해할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이 닿지 않는 것은 누군가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여전히 아프긴 하겠지만,
아프지 않기위해서 내가 아닌 사람으로 꾸밀 수는 없다.
그만큼 초라한 것이 없다.
본디 수퍼비전은 상담자의 역량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인데,
매번 나의 고질적 이슈들에 대한 통찰을 얻곤 한다.
이또한 상담자의 역량강화라 우긴다.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회복과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정도면 장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