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려운 문제

플라밍고 2012. 1. 21. 20:20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급한 성격 탓에,
일주일, 한 달, 일 년, 10년 계획들을 짜놓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목표한 바가 있고, 그것에 가까워지는 것이 보여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6개월 간 계획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목표를 잊어버렸고,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 무관심해졌다.

그 결과,
내 선호가 사라지고 취향이 희미해졌다.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에 대한 감이 사라지면서,
그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신기할 정도로 내가 누구인지 희미해졌다.

완전 무방비 상태로,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기호도 없고, 아무런 선택도 없는 상태라
아무런 감정도 정서도 없다.

이것이 얼마나 심심하고 무미건조한 상태인지...
성급한 성격인 나는 이 상태를 더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신중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지 않고,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나답지 않은 행동들을 시도해보는데,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나로인해
역시나 수치심과 부끄러움만이 남는다.

원래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전해져가는 것이라고 해도,
그 과정마저 완벽했으면 하는 바람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한동안 또 얼마나 반추를 거듭하며 스스로를 괴롭힐지 모를 일이다.

어찌됐건,
누구 말대로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나로서는
나이가 어려지는 것도 아니고,
순진하지 않은 척을 하는 것도 어려우니
나는 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면서
도저히 풀리지 않아서 낑낑대다가
울화통이 치미는 느낌과 비슷하다.
그럴 땐, 잠시 건너뛰고
풀 수 있는 문제부터...

글을 쓰면서
점점 신경질이 나고, 울화통이 치미는 것을 보니,
이제 좀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