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른

플라밍고 2011. 7. 17. 03:43


실타래가 하나씩 풀린다.
내 질문들이 하나씩 답을 찾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귀기울여 누군가를 듣고,
그마저 알아주지 않는 숨은 소망을 이해하려고 훈련했는데,
정작 나는 방치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를 듣기 시작한다.
그 출발점이 놀랍도록 아무렇지도 않게 슬며시 다가와서,
순식간에 답을 낸다.
그냥 문득 '아... 나도 그들처럼 들어줘야 하는구나' 하는 순간,
'아... 나는 이제서야 어른이 되는구나' 한다.
내가 그렇게 애써 태연하게 어른인척 하고 있었으나,
내 시간을, 내 일상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그 사람더러 어른이 되라고 타박했다.
나조차 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그더러 나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내가 들통날까봐,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그렇게 야박하게 진심을 요구했다.

아이쿠, 다행이다.
그 모든 불평과 분노는 무책임한 나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려고 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
나에 대한 것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꽤 노골적인 외침을 이제서야 듣는다.
내가 무엇이고 싶은지를 이제서야 듣는다.
그 외침을 애써 외면했던 아이가 자란다.
다행이다.

이제 시작이다.
늘 매순간이 시작이다.
시작이 애닯다.

모순이다.
자라지 않기 위해서 그리 애써 배웠다.
혹시나 무능력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쌓은 인정과 평가가
사실은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였다.
어리고 작은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
그들의 조건을 쉬지않고 채웠다.
하지만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나를 버티지 못하는 나로서는,
결국 아무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었다.
그게 나를 시들게 할 것임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다행이다.
결국 두려움과 소망은 하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제 나는 혼자다.
작은 아이로는 그 사실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교묘하게 머리와 가슴을 분리하여,
머리로만 이해하던 아이와 작별이다.
참으로 뜨겁게 차가움을 배운다.
애썼다.
그러니 애닯다.